소설쓰기 장편/서툰 남자(로맨스)

(로맨스 소설)서툰 남자20

강복주 2023. 4. 2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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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이랬나. 너는 나한테 원하는 게 없냐?”

 

류제훈이야! 귀가 맛이 갔냐?”

 

나는 너한테 원하는 게 있다. 거래를 제안하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거? 좋아! 내가 원하는 건 네가 꺼져주는 거! 사라져! 지구 밖으로 나가!”

 

협상은 타협이 있어야 하지. 네가 채희 옆에 있지 않는다면 그건 가능하지만 네가 채희 옆에 있겠다면 그건 불가능해. 나는 네 옆에 있는 게 아니라 채희 옆에 있을 테니까. 네 옆에서 꺼지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나와 마주치는 건 네 재량이지.”

 

돌았냐? 내 옆에서도 꺼지고 채희 옆에서도 꺼져. 뭔 말이 많아. 거래할 거 없다는 말인데 아직도 못 알아 들었냐? 그냥 꺼-.”

 

내 존재가 채희에게 피해와 재앙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알긴 아네.”

 

그걸 감소시키려면 내가 채희에 대해서 알아야 해. 그러려면 네 도움이 필요하고.”

 

알 필요없이 사라지면 돼.”

 

꺼질 생각이 없으니 하는 말이다.”

 

제훈은 그제야 로진의 눈을 제대로 보았다. 로진의 눈은 가라앉아있지만 제대로 빛나고 있었다. 제훈은 기가 질렸다. 고집스럽고 끈질겨 보인다.

 

……그래도 꺼져주면 안될까?”

 

이번에는 다소곳하게 다가가보는 제훈이었지만,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손바닥을 바로 세우며 거절하는 로진이었다.

 

 

 

빌라 앞에 선 제훈은 자신의 방에 갈까하다가 채희가 있는 방의 벨을 눌렀다. 방문은 금방 열렸다. 채희의 표정은 그럭저럭 밝은 편이다. 인터넷을 하고 있었어. 라고 채희는 말한다. 아마도 휴학에 관해 알아보고 있었으리라.

 

소윤의 말에 따르면 화경은 채희가 사라지자 더 약이 올라 어떻게든 잡아내려고 한다고 한다.

 

그 놈이 그렇게 매력적인가?”

 

제훈은 뚱하니 그렇게 말했다.

 

그 놈?”

 

네가 좋아하는 그 놈.”

 

제훈은 무심결에 뱉어놓고 아차, 하고 채희를 보았다. 채희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어머, 아냐, 아냐, 얘가 미쳤나봐, 하면서 새빨개져서 자신을 손바닥으로 치는데 뭔가 그 모습이 서글펐다.

 

이씨.”

 

? ?”

 

아냐. 내가 말을 잘못했다. 너는 걔 안 좋아하는데.”

 

그래! 안 좋아하는데 왜 그래! 안 좋아해! 안 좋아한다고!”

 

그러면서 채희의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다. 그러나 제훈은 누구라고 이야기도 안 했는데 채희며 자신이며 누군지 알고 있는 이 상황이 싫었다.

 

나는 말이야.”

 

.”

 

내가 너한테 너무 익숙한 거 같아. 그래서 네가 내 고마움을 모르는 거지.”

 

늘 고맙긴 해. 베스트 프렌드잖아.”

 

으으, 그래. 그게 문제가 많다는 거지. 내가 갑자기 뚝, 하고 나타났으면 어땠을까?”

 

놀랬겠지.”

 

이렇게 멋진 남자가? 하지는 않았을까?”

 

푸하하하하!”

 

채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왜 웃어!”

 

, 그랬을 수도 있겠네.”

 

그렇지? 역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너무 오랫동안 너랑 살았던 게 문제인 거야.”

 

헛 생각하지 말고 작곡한다고 밤새지 말고 챙겨 먹기나 잘해. 우리 엄마가 걱정해. 너 요새 밥양 줄었다고.”

 

좋아. 그 놈과 거래할 게 생겼어. 나는 너와 조금 떨어져서 지낼 필요가 있어. 나 이 집에서 곧 탈출할 수도 있어! 심채희. 후회하지 마.”

 

무리하지 마. 돈도 없으면서……. 너도 현실감각을 좀 가져야지.”

 

채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고 봐. 네가 이런 사람이 있었다니! 할테니까.”

 

나 할 거 많은데 언제까지 우리 집에 있을 거야?”

 

채희는 피식 웃었다.

 

너 그런데 정말로 휴학할 거야?”

 

그래. 더 이상은 피곤해. 1년 쉬다 오면 좀 잠잠해지겠지.”

 

태평해서 좋겠다. 그걸로 안 끝나면?”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할래!”

 

그래라.”

 

제훈은 턱을 괴었다. 1년 내로 자신이 채희가 몰아세워지는 상황은 막을 작정이었다. 그러려면 로진과는 알아두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거부해도 로진은 어떤 식으로든 이 공간에 들어올 것같았다.

 

성가신 놈.’

 

제훈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날도 로진은 강의실 앞에 서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키 너머로 우뚝 서서 열려있는 창문 너머로 스며들어왔다.

 

딱히 다른 경로로 채희를 만나거나 가까워질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냥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날도 채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하고 나서야 어슬렁어슬렁 걸어들어오는 제훈과 마주쳤을 뿐이다. 제훈은 로진을 보더니 어슬렁어슬렁 로진에게로 다가갔다.

 

얘기나 하지.”

 

제훈은 그 날따라 흥분하지 않고 단숨에 말했다. 로진은 숨을 짧게 내어쉬었다.

 

그러지.”

 

로진의 검은 잔머리가 바람결에 나부껴 눈썹사이에서 나풀거렸다. 제훈은 이마를 다 덮은 주홍빛 머리가 바람결에도 튼튼하게 거진 움직이지 않았다.

 

로진은 건물 밖으로 걸어나와 몸뚱이보다도 굵어보이는 나무 옆에 섰다. 로진이 먼저 나무 밑의 벤치에 앉자 제훈이 따라 앉았다.

 

지금에 와서 채희에 대해서 네가 알아볼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을 테지? 네가 채희를 완전히 고립시켜 버렸으니까 너조차도 이제 채희와 가까운 사람을 구별할 수가 없게 됐을 거다. 나 말고는 말이야. 굳이 나한테 얻어내려고 하는 이유는 그 것 때문이지?”

 

제훈은 다리를 꼬고 앉아서 비딱하게 로진을 보았다. 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계속 흐르자 제훈은 다시 자신의 의견이 무시된 것같아 욱하는 기분이 차올랐다. 역시 이 놈과는 오래 있을 수가 없다.

 

거래하자면서 사람을 이렇게만 앉혀 놓을 거냐?”

 

내가 거래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네가 거래하고자 하는 것을 말해봐라.”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데?”

 

알아서 제시해봐. 무슨 꿈을 꾸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래가 성사되려면 가격이 맞아야 하지.”

 

우선 네가 하려는 일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알아둘 것. 내 제시가 터무니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만큼 네 꿈도 터무니 없다는 거다.”

 

일단 말해봐. 생각해보지.”

 

.”

 

?”

 

적당히 이 근처에 집을 구해줘. 간단하지?”

 

. 이유를 물어도 될까?”

 

우리가 그런 사이는 아니지.”

 

그럼, 내 임의대로 집만 구해줘도 된다는 거지?”

 

, 원룸이라도 상관없어. 달고 쓴 걸 가릴 처지는 아니니까. 그 집에서 살 동안 네가 묻는 것 정도에는 답해주도록 하겠어. 물론 그 대답이 옳고 그른 지는 네가 판단해야되겠지만.”

 

무조건 맞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그럼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집이 어떠냐에 따라 나도 인간적으로 대응하겠어. 거기에 대해서는.”

 

.”

 

로진은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면 동거인이 있어도 상관없어?”

 

, 쪼잔하네. 내가 넓은 집을 구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제훈은 입을 쩍 벌렸지만 머릿속으로는 재빨리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계산기라 봤자 매우 단순하게도 채희에게 후회하지 말라고 큰 소리쳤던 자신의 자존심과 여기서의 자신의 자존심의 저울질이었다.

 

일단은 채희와 조금 떨어질 수 있다면, 동거인이든 뭐든 상관없어. 그 안에서 살 수만 있으면 돼.”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로진은 턱을 매만졌다. 제훈은 자신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자신도 제훈을 이용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아버지는 혼자서 나와 산다고 하면 결코 허락하지 않을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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