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기 장편/서툰 남자(로맨스)

(로맨스 소설) 서툰 남자18

강복주 2023. 4. 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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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요? 옆에 앉아요.”

 

로진은 싱긋 웃었다.

 

자리에 앉자 조금 걸리는 일이 있었다.

 

너 왜 체육복을 입고 있어? 축제라서?”

 

선배. 고민이 있는데 들어줄래요? 선아선배한테도 말했는데 선배는 그러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로진선배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뭔데?”

 

나 자퇴할까봐요.”

 

삐걱삐걱. 그네소리가 계속 들렸다.

 

잘 안 들려.”

 

아니면 휴학이라던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로진은 일어서서 채희가 앉아있는 쪽의 움직이는 줄을 잡았다. 삐걱이는 소리가 점점 약해진다. 그네가 멈췄다.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을 왜 했어?”

 

채희는 웃으면서 로진을 보았다.

 

그러게. 나약하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모르겠어요. 그쵸.”

 

로진은 줄을 붙잡고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제야 채희와 눈높이가 맞았다.

 

나는 네가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어.”

 

선배라면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

 

채희는 눈을 감았다. 로진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져오고 있었다. 로진의 차갑고 부드러운 입술이 채희의 붉은 입술에 닿았다. 채희는 도중에 눈을 떴지만 로진의 이마는 오래도록 붙어있었다.

 

너를 좋아해. 네가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어.”

 

역시.”

 

채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되겠다. 나 휴학이라도 해야될 것같아.”

 

채희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하게 맺혀있었다. 로진은 큰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벌리고 채희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내가 싫어서?”

 

아니에요. 그 반대에요.”

 

채희는 로진을 밀쳤다.

 

나 선배 좋아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좋아하잖아.”

 

그러면 좋아하면 안돼?”

 

이번에는 로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는 사귀면 서로 불행해져요. 내가 선배 그 말들 다 짖궂은 장난이었다고 생각할게요. 미워하지 않을게요.”

 

난 진심이었어!”

 

가볼게요!”

 

채희는 그네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앞을 막고선 로진을 밀었다. 로진은 가볍게 밀쳐졌다.

 

기다려!”

 

로진이 외쳤다. 채희는 뛰었다.

 

기회만 주면 돼!”

 

채희의 뒷모습에 대고 로진이 외쳤지만 채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채희는 공원을 나가서도 한참을 뛰었다. 달리는 것은 언제나 스트레스가 풀린다. 중거리 선수로 뛰었을 때도 숨이 가빠오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항상 단순하게 살아왔고 단순하게 살면 삶이 그냥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라지 않았다. 조건 좋은 사람.

 

연애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좀 더 평화롭고 평범한 사람이기를 바랐다. 특별하다는 말에 매혹당하고 싶지도 않았고 특별함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하악, 허억.”

 

무릎을 세우고 결국 멈춰서버린다. 페이스 조절은 실패다.

 

바라지 않았다.

 

이런 건.

 

집으로 돌아가야지. 어디까지 온 거야?”

 

채희는 뛰어온 길을 생각하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그다지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깊지 않게 그렇게, 도망가고 싶다.

 

 

 

10시의 동아리실에는 로진밖에 없었다. 로진은 채희의 뒤를 쫓지 않고 동아리실로 바로 들어왔다. 입김을 불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겨울의 동아리실은 차가웠고 보일러를 키는 곳도 없었다. 간신히 전기가 들어와 전등이며 컴퓨터의 불을 킬 수 있을 뿐이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로진은 동아리실의 책장에 책이 헐겁게 꽂혀 있다못해 널부러진 광경을 보았다. 그 책 중에 몇 권은 로맨스였다. 생전 읽지도 않았고 읽으리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그런 디자인의 책이다.

 

열애니 하는 제목들을 넘기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집어냈다.

 

그녀의 마음.

 

그런 제목을 보다가 로진은 채희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 아이의 진심을 극단적으로 저울질해가며 책을 들었다. 내가 진절머리나게 싫겠지. 아니야, 어느 정도 마음이 있으니까 그런 행동을 했겠지.

 

결국은 모르겠다.

 

로진은 눈으로 책을 훑어내려갔다. 추위가 몰려들어왔지만 코트를 여미며 견뎠다. 아버지며, 아주머니며, 새어머니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난리가 났을 것이다. 시간은 어느덧 2시다.

 

채희의 속을 알기 이전에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자기 혼자 좋아하고 있을 뿐인데. 접점이라고는 없다.

 

파렴치한이다.

 

갑자기 욱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로진은 책을 던지듯이 책장에 놓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이 추위에도 잠이 스며온다. 휴대폰은 아까 전부터 울리고 있었다.

 

이거, 제 정신이야?”

 

로진은 눈꺼풀을 뜨다가 꺼풀이 천근만근은 되는지 다시 감아버렸다.

 

로진, 제정신이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의자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로진은 비틀거리며 의자가 내동댕이 쳐지기 전에 일어섰다. 로진은 겨우 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곱슬머리에 커다란 눈이 자신을 노려보았지만 커다랗고 선량한 눈은 그리 살기가 어리지는 않았다. 민훈이다.

 

시계 봐라.”

 

로진은 시계를 보았다. 새벽 5시다.

 

이 형님이 이렇게 새벽에 깨서 너를 찾아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아버지 귀에 들어갔습니까……. 의외로군요.”

 

뭐가 의외인데?”

 

아버지가 저를 찾은 이유는 꼭 제가 걱정되어서만은 아니겠지만…….”

 

사춘기를 너무 조용하게 지낸다 했더니만, 사춘기냐?”

 

그냥. 뭐라고 할까요. 제가 역시 모든 걸 망치는군요. 제가…….”

 

됐다. 잘못이고 뭐고 따지러 온 건 아니야. 네 놈이 집안이며 여자이며 예의가 지독히도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따지러 온 건 아니야.”

 

로진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걱정돼서 왔다! 근처에 포장마차나 먹을 곳이 있으면 가자. 여기 이 추운 데서 뭘하냐? 진짜 나도 별나다는 소린 듣는데 너만큼 괴짜는 아닌 것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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