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기 장편/서툰 남자(로맨스)

(로맨스 소설) 서툰 남자 12

강복주 2023. 4. 13.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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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진이 엷게 웃자 채희는 뜨거운 것이라고 만진 마냥 손을 급히 떼어냈다.

 

아니에욧!”

 

로진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채희는 머뭇거렸다.

 

사실은요.”

 

.”

 

누가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너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네.”

 

그 것도 많이 싫어하는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었구나.”

 

별 일은 아니에요.”

 

그래?”

 

로진은 채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이에요!”

 

안 믿는 게 아니라.”

 

안 믿고 있네요.”

 

좋아서 보는 거야. 네 얼굴이 질리지가 않아서. 계속 봐도.”

 

채희는 말문이 막혔다. 어쩐지 지금이라면 빨갛게 칠해진 사진 정도는 모두 잊어버릴 수 있을 것같았다. 채희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얼굴도 푹 숙였다.

 

나한테 얼굴 보여주기 싫어?”

 

로진이 섭섭한 듯이 말했다.

 

아니에욧!”

 

결국 빨개진 얼굴을 위로 들 수밖에 없었다.

 

 

 

*

 

 

 

지선은 쓴 웃음을 지었다.

 

당해낼 수 없이 대단하니까. 이 오빠.’

 

꽃같이 웃으며 선배들의 번호를 모조리 따간 제훈에게 바치는 찬사였다. 자신은 그저 이 곳에 언니들이 있다라는 말만 했을 뿐인데 스케줄도 없는지 바로 나타난 제훈은 경계심을 눈 녹이듯이 녹여 버렸다. 즉석에서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서비스까지 제훈은 완벽히 해내어서 가볍게는

 

어머, 귀엽다! 동생삼고 싶어.”

 

부터

 

너 일일남친할래?”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까지 이끌어내고 있었다.

 

요새 소문 도는 거 알아요?”

 

제훈은 능청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각자의 관심사를 말했다. 옷에 대한 소문, 연예계에 대한 소문, 물건에 대한 소문. 채희에 관한 일은 그렇게까지 유명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선의 입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돌고는 있을 것이다.

 

오늘 사물함 앞을 지나가는데 어떤 애가 자기 사진에 피칠이 되어 있어서 막 쇼크먹더라구요.”

 

! 그거 알고 있어. 내가 잘 알아.”

 

맞아. 그건 소윤이가 잘 알아.”

 

그런데 말하기가 좀.”

 

단발머리를 하고 턱이 강해보이는 여자를 필두로 여러 사람이 말을 꺼냈다. 커트머리를 한 여자가 마지막에 눈을 찡긋하며 화제를 옮기려고 했는데 제훈에게는 그 것으로 충분했다. 번호는 이미 모두 손 안에 들어와 있었다.

 

-소윤누나

 

저장되어 있는 휴대폰을 보며 제훈은 씨익 웃었다. 이제는 두 가지 방법이 남았다. 몰래 다가갈 것인지 당당하게 굴 것인지. 이 사람들의 관계를 보자 판단이 섰다.

 

그리고 소윤을 바라보았다.

 

저는 누나가 마음에 들어요.”

 

어머. 쟤 봐.”

 

질투나게.”

 

주변의 친구들이 소윤을 툭툭 쳤다. 소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

 

소윤은 자신에게 드디어 봄이 온 것만 같았다.

 

제훈은 화려하게 웃었다.

 

 

 

 

 

집 앞까지 오게 해버렸네.”

 

채희는 싱긋 웃었다.

 

궁금했어. 너는 어떤 집에서 사는지.”

 

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채희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저기 국수집 위가 우리집이에요. 소박하죠?”

 

손가락 두 개 너비의 붉은 벽돌로 세워진 오래된 빌라였다.

 

로진은 빌라를 천천히 살폈다. 이런 식의 빌라를 지나치면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자세히 본 적은 없었다. 그 안에서 누군가가 살 거라는 생각조차 어쩌면 해본 적이 없었다. 채희가 그 곳에 산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그 건물은 도시를 장식하는 조형물에 불과했다.

 

안전해?”

 

곰곰이 생각하던 로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직까지 별 일은 없었어요. 도둑이 든 적은 한 번?”

 

약속해줘.”

 

뭘요?”

 

무슨 일 있거든 무조건 나한테 말할 것.”

 

에이. 선배가 무슨 내 남친도 아니구.”

 

나는 지금부터라도 좋아. 네 남자친구. 넌 여자친구.”

 

, 자꾸 이럴래요.”

 

그게 싫으면 무슨 일 있으면 말해주면 되잖아.”

 

채희가 올려보자 곧장 로진과 눈이 마주쳤다. 로진은 또 무표정에 가까운 엷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서서 걸었다. 그는 항상 이런 식이다.

 

저기요!”

 

로진은 등을 보이며 걷다가 멈추어서 뒤돌아본다.

 

작별인사는 안해요?”

 

좋은 밤.”

 

선배도 좋은 밤 보내요.”

 

채희는 크게 손을 흔들었다. 로진은 이번에는 좀 더 입꼬리를 올려 웃다가 다시 걸어서 어디론가로 갔다. 채희는 크게 숨을 내어쉬며 로진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6시면 아직 제훈이 시끄러울 때였는데도 윗층은 조용했다.

 

채희는 방문을 닫고 겨울이라 벌써부터 어두운 방 안에 스탠드를 키고 의자에 앉았다. 오래된 나무책상이 견고하게 창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가 창 너머로 살짝 보였다.

 

채희는 시를 썼다.

 

한참이나 시를 쓰다가 문득 사진이 다시 떠올랐다. 빨갛게 칠해진 눈,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듯한 그림. 채희는 한숨을 푹 내어쉰다.

 

띵동. 띵동.

 

7시가 조금 넘어서 현관의 벨이 울렸다. 흐릿한 작은 화면으로 상대방을 보자 익숙했다. 류제훈이었다. 채희는 문을 열었다. 제훈은 채희가 문을 열자 검은 봉지를 채희 얼굴 가까이로 들어올렸다. 짤그랑소리가 나는 것이 안에 들어있는 것은 병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위에 드러난 병의 꼭지는 초록색.

 

소주?”

 

오늘 한 잔 해야지?”

 

무슨 날이라고 한 잔 해?”

 

생각보다 오늘 멀쩡하네. 아침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하여간 네가 강심장인 건 인정해 줘야 돼. 내가 더 멘탈이 부서진 거같다.”

 

으이그.”

 

채희는 웃으며 집 안에 있는 간단한 밑반찬과 함께 잔을 두 개 내어왔다.

 

걱정 마. 난 멀쩡해.”

 

그녀의 말에 제훈은 헤실헤실 웃었다.

 

벌써 취했어?”

 

아니. 그래도 네가 웃으니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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