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기 장편/도시의 밤(일반)

#극본외전: 흔들리는 마음2

강복주 2023. 3. 2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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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찍어서 넘어가는 나무가 내 소꿉친구였을 줄은, 어떻게 알았겠냐.”

 

그리고 그렇게 사귀어서 금새 헤어지는 애가 소꿉친구였을 줄도 몰랐겠지.”

 

침묵.

 

헤어졌어?”

 

오늘.”

 

안 붙잡던? 그렇게 너 좋아서..”

 

자기밖에 모르느냐고 하기는 하던데.”

 

그 놈이!”

 

승철은 무덤덤하지만 격렬하게 말하고 컵을 탁 화연의 옆에 놓았다.

 

튀잖아!”

 

우울할텐데 커피마셔.”

 

 

 

 

 

*

 

 

 

 

서화연. 20. 집에서 통학예정. r대학 미술과에 합격.

 

화연을 피했던 남자, 안상후. 26. r대학 미술과에서 성적은 우수하나 휴학이 잦아 쓸 수 있는 휴학계를 모두 쓴 상태.

 

며칠 뒤, 그들은 마주쳤다. 무려 새터에서.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누구가 좋아하는~!"

 

"원샷! 원샷!"

 

"우오~ 폭탄주!!"

 

사람들은 신나있었지만 화연은 지나치게 숫기가 없다는 잔소리를 들어가며 한 모금씩 마시고 있었고 상후는 바깥에서 열심히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학생인데다가 나이도 많은데 미쳤다고 왔어. 오라고 해서 오면 어쩌자는 거야. 나란 바보는.'

 

"별이 참 맑네요."

 

"우왓! 깜짝이야."

 

"친구 기다리고 있어요?"

 

"그걸 어떻게!"

 

"느낌."

 

그리고 화연은 웃는다. 취기가 돌자 이 공간에 수많은 생각이 떠돌든 말든 기분이 좋았다. 상후는 화연의 얼굴이 익숙한 얼굴인 걸 깨닫는다. 역시 정신이 이상하다고 피하려는 순간 갑자기 이 공간이 특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왜 여기 있어요?"

 

"이번에 미술과 들어온 화연이라고 합니다. 선배님이신 줄 몰랐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 그렇구나."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건 잠시, 상후는 손을 휘휘 내젓는다.

 

"가서 놀고, 그리고 남자 선배에게 코 꿰이지 마. 졸업 후에도 영원히 고통받을걸. 남자들이 사근사근한 거 경계하고 알았지?"

 

", 뭔가 안 좋은 추억이 있나봐요."

 

"내가 그 유명한 4학년 여자선배와 1학년 cc였는데 아직도 고통받고 있어."

 

"더 듣고 싶네요."

 

"나머지는 비밀!"

 

화연은 그의 옆모습을 보았다. 마음이 편안하고 이상하게 처음으로 모래처럼 떠오르는 생각들 말고 깊숙한 곳의 생각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불가능한 능력은 아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집중하면 되지만,

 

'싫어하겠지.'

 

화연은 한참동안 옆모습을 보았다.

 

 

다시 안.

 

화연은 모처럼 많이 웃는다고 생각하며 다시 빙그레 웃었다. 안의 공기는 탁했지만 바깥은 별이 촘촘히 박혀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안상후는 자꾸 화연에게 눈길이 갔다.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거 같은데.'

 

화연은 말을 걸지 말라는 듯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 무거운 느낌은 상후에게도 좋아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신경이 쓰이고 불편한 정도긴 했지만 편하지는 않았다. 신입생답게 좀 더 활기차면 좋을텐데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까 말할 때 정도의 분위기라면 괜찮을텐데 왜 저렇게 가라앉은 거야?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정작 화연은 그런 자신의 겉보기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상후는 계속 그 모습을 보며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보면 예전의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신입생 답게 좀 활기차면 좋을텐데.”

 

그 때 자연선배의 목소리. 4년 전의 일이었다. 이 부근에서 그녀의 얼굴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모든 신입생들은 나댐과 조용함 사이에서 포지션을 잡느라 너무 힘들겠지. 안상후는 그렇게 생각하며 잔을 부딪혀오는 사람도 없는데 시원하게 쭈욱 원샷을 해버린다. 새터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상후에게 그렇게 말하고 새침하게 생긴 얼굴을 부드럽게 휘도록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 같은 고등학교 애가 없나봐?”

 

. 인문계에서 미술과로 진학했어요. 같은 고등학교 애는 없네요.”

 

상후는 솔직하게 말했다.

 

누나가 돌봐줄까?”

 

애도 아니고 돌보긴 뭘 돌봐요.”

 

새침하게 생긴 쪽은 누나라는 서자연 쪽이었는데 나오는 말은 상후의 말이 더욱 새침했다. 아마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전에 감지했던 것이 아닐까. 위험한 인물이라고. 그러나 새터에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자연과 상후는 사귀기 시작했다.

 

그리곤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들은 헤어졌다. 맞지 않는 게 가장 컸지만 그 이전에 자연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학교에서 어떤 남자선배와 함께 손을 잡고 다니는 자연의 모습을 본 이후에 상후는 깨끗하게 이별을 말했다.

 

헤어져요.”

 

너는 그렇게 쉽게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니?”

 

누난 그렇게 쉽게. 됐어요. 헤어지고 나서 만나던가!”

 

너는 나를 외롭게 했잖아.”

 

쓸데없는 변명 말아요.”

 

나 쓰레기로 만드니까 좋아?”

 

스스로가 스스로를 쓰레기로 만든 거겠지.”

 

너 이제 헤어졌다고 막 나간다?”

 

건방진 자식이라고 소문이 나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 이후로 과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번은 아이러니하게도 복학생이었기 때문에 참석한 자리였다.

 

덕호 녀석의 애원이었다.

 

, 나 이번에 알바다녀오고 군대다녀오고 한다고 아는 녀석이라고는 너밖에 없는데 그래도 학회생활은 해야하지 않겠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알기 시작해서 덕호 녀석과도 이제 6년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 녀석의 부탁에 마지못해서 왔는데..

 

선배 취했네요.”

 

그래서요. 그래서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다냐.’ 물 한잔이 들어가면서 어느 순간, 상후는 자기주변에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몰려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주절주절 말이 많았던 것일까. 주변에 낯선 얼굴들은 모두 호기심으로 반짝거리고 있다.

 

상후는 그 와중에 호기심을 잃은 한 사람이 있었음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 인물은 화연. 화연은 너무 많은 생각이 공기를 떠돌아 정신이 없고 지쳐가고 있었다. 상후는 술에 취해 자연과 사귀었을 때를 이야기 하기도 했다.

 

화가 났었던 그 생각들이 공기를 떠돌았다. 화연은 그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냥 사람이었구나. 당연하지만.’

 

화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건 당연하고 인간적인 일이기도 했다. 화라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버티기에는 너무 무거운 감정이다.

 

혼자 반하고 혼자 멀어지는 것이 무슨 예의인가 싶었지만 때로는 화연 자신에게도 이런 일이 있는 모양이다. 밝고 비수같은 것은 품지 않는 즐거운 사람이라고 멋대로 착각했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데도.

 

피곤했다. 와중에 친해지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것을 위해서 좋은 자리라면 좋은 자리이지만 화연으로서는 친해진다고 해도 의미는 없었다. 사람들의 감정은 정말 쉽게 변해서 불변은 믿을 수 없다.

 

아이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 뿐이다.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어.’

 

변덕쟁이. 이런 화연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그만큼 화연에게는 친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녀는 웃고 떠들고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는 않았다. 물론 그가 그렇게 부른다고 해도 그를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격의 없는 존재는 하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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