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밤, 미완의 에필로그
미완의 에필로그
“재가 사라졌어요. 그를 찾겠어요?”
아니요. 나는 의견을 감추듯이, 그러나 확실하게 말하고 만다.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지를 않았다. 두 번째의 실종. 의욕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토록 이기적인 인간이었던가.
다시금 자괴감이 드는 것이었다.
“찾지 않겠어요?”
유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당신은 계속 재의 곁에 있을 건가요?”
유의 물음에 답하여 연이 물었다.
“아마도.”
유는 그렇게 대답하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그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아요. 절대.”
나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같은 것을 보아도 우리는 결코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그가 보는 것과 내가 보는 것은 틀림없이 달랐다.
“당신은?”
유는 질문을 던졌다.
“물론, 재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아요.”
나는 말을 꾹꾹 눌러 담듯이 말했다.
“그렇겠죠.…….”
유의 말끝이 흐려지는 것은 그런데 왜 찾지 않느냐는 물음과도 같이 들렸다. 왜 찾지 않느냐. 유가 재를 찾는 이유와 내가 재를 찾는 이유는 달랐다.
나는 인간의 친분관계나 단순한 호기심마저 나의 충족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이기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쓰고 있는 그 허울이 싫었다.
벗겨내면 다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것이 아니었다. 유는 진작부터 벗겨낸다 하더라도 그 것이 다 풀리지 않을 것을 아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것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건 벗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있으니까.”
“나요?”
“재에게는 유 씨가 있잖아요.”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와 결혼하게 될까봐 그래요? 가족은 만나지 않을 수 있어요. 당신이 있으면 그래도 재는 얌전했어요. 걱정은 되는군요. 그가 버려졌다고 생각할까봐.”
“가족을 만날까봐 찾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다른 관심이 생겼어요?”
그는 혐오스러운 구석을 마주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혐오스러운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드러낸다하더라도 더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아요……. 그냥 이제 중요한 게 바뀌었죠.”
나는 심각하게 대꾸했다. 심각한 대꾸에 유는 한참간이나 대답이 없더니, 잔잔하게 말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도록 해요.”
“미안해요.”
“미안할 것까지야. 난 당신을 만나서 즐거웠어요. 상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위로가 됐어요.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상처를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는 게 참 슬프기도 해요. 그래도 나만 이런 것이 아닌 걸 알아서 조금은 기분이 안정이 되더군요. 어떤 이유가 있었겠죠.”
나는 유가 냉소적이고 비관적이지만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질은 서로 엮일 것 같지 않은데도 묘하게 잘 엮여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다정해서 냉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볼 일이 없겠죠?”
“그렇겠죠.”
전화는 그렇게 끊겼고 나는 그와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슬퍼졌다. 사람과의 관계에 끝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슬펐다.
아직 가슴부근의 문신은 짙었다.
내가 지금 술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나는 재를 찾아 나섰을까. 그 것은 모를 일이다. 사실 술집을 가야한다는 그 이유는 이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부족했다.
어쩌면 진성도 허상처럼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준비가 선택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안다. 선택이라는 것은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뒤늦게 내가 술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곳으로 향했다.
바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를 처음 만날 때와 같이 한적했지만 다른 점은 진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날을 잘못 짚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술을 마셨다.
주인과 몇 마디를 나누었지만 주인은 이내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어느 새인가 나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차가운 유리가 내 얼굴을 투명하게 비추어 낸다.
점점 따뜻해지고 있는 나날들 속, 이 술집 안은 어둠으로 내려앉아서 계절을 보지 못하게 한다. 나는 지금 이 술집 안에서 희미하게 비추어진 내 얼굴밖에 보고 있지 않았다.
여기에 있으면 종종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사람과 사람뿐이고 나머지 것은 없는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아마 진성과 함께 있었던 탓이다. 그렇게 사람만이 존재하는 시간은 비현실적이고 쓸모도 없는 듯이 보였지만 내게는 정말로 중요한 순간이었다.
사람은 사람을 바라볼 때 가장 큰 상처가 남는다. 그 상처는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과정을 다시 하는 것으로만 치유될 수 있는 것이었다.
치유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정작 완벽해진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완벽해졌다고 하더라도 그 완벽마저도 항상 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면을 쓰며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여자는 화장을 하고 남자는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차를 샀다. 명품을 입고 나를 감추고, 나를 감추면서 당당한 척 하지만 속으로 떨고, 보이는 것 그대로를 헐뜯거나 동경하고…….
나 자신이 나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바보라고 불러대면 바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그 것은 물론 중요한 것이었지만 가면을 벗기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지독히도 궁금했다.
유는 가면 자체를 비웃었지만 가면 자체를 인정하고 있었다. 나는 가면을 인정하지 못했고 지금도 사실은 인정한 것인지 아닌지 모른다.
나는 계속해서 진성을 기다렸다. 시계가 간다. 째깍째깍. 11시. 12시. 이제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시간까지,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나타날지도 모른다. 불확실 속의 기대는 통증이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이상 견딜만한 기대였다.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를 기다리는 동안 깨닫고 말았다.
어쩌면, 못한다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김유나 재가 나타내는 극적인 모습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동시에 어느 정도는 부럽기도 한 것이었다. 이 부러움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사랑하고 있었다면 좀 더 다른 형태로 집착하고 있을 텐데, 나는 집착조차 기괴하지 않은가.
몸이 싸했다. 이 어둠 속에서 얼어붙을 것 같았다.
마침내 진성이 나타났다. 나는 길고 지루한 기다림이 없었던 것처럼 신경이 곤두섰다. 일종의 깨어남이다. 촛불들이 은은히 켜진 가운데를 걸어오는 창백하고 마른 몸은 꼭 시체가 되살아난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걸어간다. 그는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언제나 앉았던 그 자리로 가서 마치 조형물처럼 앉아있는 것이었다.
‘다가오길 기대한 건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내가 다가가야 하는 사람이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안녕.”
나는 마치 기계에 입력된 말을 하듯 어색하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동안 잘 살고 있었어?”
“그래.”
그는 전에 없이 대답이 짧았다. 얼마 전, 나는 그가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을 건드리고 만 것이다. 이 상황은 불편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그 때는 미안했어. 내가 억지를 부린 것 같아. 그땐 좀 이상해져서…….”
그는 그 사과를 표정변화 없이 들었다. 그가 나와 화해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짐작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여가며 더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가 먼저 잘못했지. 예전처럼 지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전처럼 어색한 웃음을 짓지 않고 표정이 없었다.
“여자 친구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잘못이었던 것 같아. 너도 쓸데없는 일에 얽매이게 됐어.”
그의 잘못했다는 사과는 화해를 하고 가까워지기보다는 경계선이 뚜렷하게 그이는 느낌이었지만 나는 그 것을 받아들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요즘은, 기억의 흔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
그리고 우리가 나누던 관념적인 대화들. 그 것은 역시 하나의 허상에 불과했다. 이해에서 동떨어진 허상. 우리는 본질을 본다고 하면서 허상에 집착하고 있었다.
내게 마지막에 남아있는 것은 타인이 보는 성격 또한 아니었다.
“기억의 흔적?”
나는 되물어보지만 벽에 대고 질문하는 듯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그와 나는 소통하고 있는 걸까. 소통하고 있었던 것일까.
있는 그대로의 나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의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지나고 있었다.
진성은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 듣고 있었다. 환상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현실대로 계속 흘러나가고 있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과거의 사람을 생각한다. 벽을 보고 말하는 듯 서로 다른 생각, 다른 이야기.
가면이라는 것은 그 것을 답답하게 여기고 악하다고 여길 때 악해지는 것 뿐. 어차피 낙천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진실과 거짓이 배합되어야만 하는 것인 모양이다. 가면이 없을 수는 없는가?
좋다. 옆에 있을 수 있다면, 가면 따윈 아무래도 좋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했다. 테이블 옆에 놓인 초는 밤새 타올라 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있었다. 나는 가벼움을 느꼈다. 가벼워서 슬픈 것을 느꼈다. 그러나 또한, 그 슬픈 마음 또한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세상은 꽤 쉬워져 있었다. 나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진성은 퀭한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새벽을 맞이했다. 나도 어두운 술집 아주 작은 창으로 햇살이 번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주인은 비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전에 넥타이를 맨 중년 아저씨 그룹이 새벽 3시까지 머물다가 4차를 가자고 무리를 북돋으며 다시 밖으로 나섰고 동이 틀 때까지 있는 것은 우리뿐이었다. 내쫓지 않은 것은 주인의 배려라면 배려였다. 문을 닫을 시간은 지나있었다.
“시간가는 줄 몰랐어. 너와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가.”
진성은 말했다. 이렇게까지 오래 이야기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오늘은 내도록 듣기만 했다. 그리고 옆에 있기만 했다. 그의 말에 어떤 말도 토를 달지 않았다.
“넌 참 좋은 녀석이야.”
그의 오른손의 문신이 오늘따라 시야에 두드러진다. 어떻게 저 것이 새겨졌을까. 그러나 나는 묻지 않는다.
나는 지루해져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뉴스가 떠 있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면 주변에서 신기하게 보곤 한다. TV처럼 당연한 물건이 되었다.
저 먼 곳의 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진압되었다는 것과 이번 대선에서는 누가 누구를 지지하고 누가누구를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말한다. 다른 나라의 자연재해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댓글을 남기고 있었다. 누군가를 질투하는 사람들도 곳곳에 댓글을 남기고 있었다.
너와 나밖에 없는 이 세상 속에서.
나는 살아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