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주 2023. 3. 7.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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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잠을 많이 설친 기분이었다. 마루는 차가웠고 밤이슬도 그대로 몸에 스며있었다. 서늘한데다 공개된 장소에서 잠이 든 것은 실수였다. 귀신 사는 집으로 되어 있으니, 안전도는 제법 믿을만했지만 나까지 무서워서 잠들기가 힘든 건 하나의 결점이었다. 우는 소리에 선잠이 깨자, 나는 문을 안 잠가놓았던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너 효은이야?”

 

아이의 몸을 잡는데, 몸이 차갑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불길하다.

 

들어와서 자.”

 

아이는 흔들리면서 차가운 신음을 뱉는다. 나는 당황해서 아이의 몸을 흔들었다.

 

효은아!”

 

아이는 눈을 떴다. 흔들리는 동공에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나는 물었다.

 

이런 일, 자주 있어?”

 

아뇨. 내가 잘못해서 그래요. 내가 잘못했을 때…….”

 

자신이, 모든 걸 잘못한 거라고 아이는 말한다. 나는 담담히 아이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래, 경민의 말대로 어쩌면 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였다. 이대로 두면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혼자 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두면 그 무게를 지니고 추락, 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무엇보다 맞고 있다. 이미 많은 상처가, 어린 몸에 새겨졌다. 과연, ‘옳은가?’ 개입을 꺼리는 내 모든 가치관이, 과연 나를 위한 게 맞을까. 그렇다면 는 이 아이가 계속 맞아도 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아이를 방 안에 들이고 나서 나는 무얼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아이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한다.

 

그 것은 사회나 법률적으로 규정지어놓은 정의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사회의 잣대란 이중이나 다중일 경우가 허다했다. 그 잣대의 정체는 명백히 으로, ‘정의만을 외치는 자는, 사회에서 퇴출되기 마련인 것이다. 어차피 정의는 강자가 쥐고 있는 것이었다.

 

감정이 증폭될 때의 나는, 이성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을 종종 해버리고는 했다. 감정의 일렁임이 사그라지고서야, 나는 뒤늦게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는 적이 잦았다.

 

지금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가 그 모습이라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아챘다. 그러나 단순한 일렁임이 아닌, 내면에서 들끓는 분노였다. 그 것은 아주 오래 전, 경험했던 감정으로…… 사회의 일부가 되면서 내게 없어진 지 오래된 것과 같았다. 이미 세상에 자취를 감춘 고려시대의 커다란 신발처럼 추억으로 남은 과거와 같은 감정이 지금 왜 살아나는지 알 수 없었다.

 

진정해.

 

나는 가슴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주문으로 쉽사리 가라앉을 게 아니어서, 나는 계속 갈 곳 없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얼어있던 몸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조금씩 녹아들어갔지만 분노는 더욱 뛰고 있다. 나는 숨을 밤 한 가운데로 흘려보냈다.

 

옳은가. 옳지 않은가.

 

적합한가. 적합하지 않은가.

 

그 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효은의 손을 쥐고 길을 걸었다. 효은은 겁을 먹고 있었다. 어쩌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으로 나는 걷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다. 경민은 분명히 정신 차리라는 소릴 해대겠지만 애초에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제멋대로라는 증거와 같았다. 내가 이러한 일을 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모른다. 나는 다만 행동하고 있었다.

 

길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복잡해진다. 얽히고 얽혀서 거기가 여기 같고 여기가 거기 같은 비슷한 집들이 즐비하다. 모양이나 재질 또한 비슷한 집들이다.

 

귀신인데, 이렇게 낮에 다녀도 되요?”

 

아직도 나를 귀신으로 알고 있는지, 효은은 그렇게 물었다. 의심이 없는 아이였다. 아버지를 추종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믿고, 내가 귀신이라는 진수의 말을 믿고, 진수가 의심하는 지금에서도 자신이 귀신이라 주장하는 내 말을 믿는다.

 

이제껏 그런 사람은, 싫어했다. 순수의 이름. 그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는 순간, 그들로 인한 수많은 피해는 없는 것과 같아져버렸다. 그건 몹시 씁쓸한 일이었다. 의심이 없는 인간처럼 씁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부류가 또 있을까.

 

하지만 이 아이를 미워할 수 없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었지, 이미 만나서 친밀을 나누는 한 개인은 아니었다. 이래서, 나는 정이라는 게 싫었다. 때때로 굳게 믿었던 신념을 버리면서, 신념이 희미하게 변해버린다. 애매모호함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회적인 동물…… 거기엔 이성도 정의도 고집도, 없다. 주변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의견의 전부로, ‘대세만이 있을 뿐이다. 혹은 맹목적으로 대세를 거스르는 친분이 있을 뿐이다.

 

됐어.”

 

나는 말했다.

 

?”

 

귀신이니 뭐니, 그런 거…….”

 

아이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의문이 담긴 눈동자를 보내왔다.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서툴렀다.

 

다 왔어요. 바래다줘서 고마워요.”

 

나도, 들어갈 거야.”

 

?”

 

네 집에 들어갈 거라고.”

 

아이는 겁먹은 눈을 한다.

 

걱정 마. 별로 나쁜 일하려고 가는 거 아니니까.”

 

 

 

시야가 좁고, 단편적으로밖에 보지 못했던 내 시선에는, 두 개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돈이 가장 적게 드는, 폐가라 불리는 한옥-에 살기는 했지만 이 도시에는 누구나 한 눈에 볼 수 있는 빌딩과 수많은 아파트 단지, 고급 오피스텔촌이 있었다. 기술자들이나 연구원들, 사업체의 직원들은 주로 그런 곳에서 살고는 했다.

 

발을 들이는 순간, 묘한 괴리감이 든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도시 전반에 느껴지던 어슴푸레한 기괴함 역시 그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 효은도 내게 똑같은 것을 느꼈을는지도 모르겠다. 괴리에서 나오는 기괴. 낡은 한옥에 머무르는 것은 아무래도 흔치 않았다. 나 역시 괴리된 존재였으리라. 눈에 보이는 것은 큰 빌딩이며, 이곳의 상징은 아마 그 것일 것이다. 이런 판잣집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커다랗고 화려한 빌딩이었다.

 

나는 뚜벅뚜벅 효은의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쪽 부근은 고깃배 부근에서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쪽이었다. 단층으로 되어있는 집은 오래된 모양으로 낡아있었고, 좁은 마루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내게도 위험한 공간이다.

 

그나마 경민이 뒤에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모를 안도감이었다. 그러나 나보다 더 불안해하는 것은 효은이었고, 나 역시 조심스러웠다. 방으로 걸어 들어가기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방 안에는 술 병 몇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에게 설교를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와 싸우기 위해 온 것도 아니다. 나는 힘이 없다. 하지만 나와 그의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눈이 마땅한 먹잇감을 찾은 것처럼 광기가 번뜩였다.

 

누구요.”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효은이에 대해서 말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선생이요?”

 

아니요.”

 

혹시,”

 

그의 말은 끊기며 묘한 살의를 뿜는다.

 

얘 등에 약을 발라줬소?”

 

그런데요.”

 

내 딸이야.”

 

그렇죠.”

 

네 년이 뭔데 간섭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직업이 뭐요?”

 

글쎄요.”

 

그런 걸 하나도 안 밝히면 나도 믿을 수가 없소.”

 

무직-이라고 해둘까요. 그럼.”

 

그는 표정을 굳혔다. 내 목적은 하나였다. 아이가 더 이상 맞지 않도록 하는 것-. 언뜻 불가능해보이지만 어떤 수단이냐에 따라 못할 것도 없어보였기에 무심코 나선 길이었다. 더 이상 개입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여기에 온 지 고작 2주 남짓이었다. 변할 리 없었다. 나는 여전히 한심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내 어깨에 한 아이의 무게를 온전히 올려놓을 순 없었다.

 

나와 보겠나.”

 

그의 말이 은연중 내려갔다. 효은이 내 옷깃을 그러잡자, 그는 거칠게 아이를 잡아떼어 자신의 곁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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