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밤, 귀신3
이곳은 공기 속에 항상 파도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이토록 불안정하다고 울부짖는 듯이, 그 소리가 항상 귀를 적셨다. 공기는 항상 우는 것같이 느껴졌다. 내가 울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울었느냐 묻는다면, 그 대답은 할 수 없었다. 내 손을 붙잡는 사람들. 그들의 눈은 언제나 붉게 적셔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으려고? 이주일이나 지났어.”
“글쎄…….”
“걘 뭐야? 갑자기 나보고 왜 귀신이래? 내가 그렇게 이상해?”
나는 풋 웃었다. 내 웃음이 못내 불쾌한지, 경민이 이쪽을 노려본다. 나는 간략히 사과하고 말했다. 그 애는 나를 귀신으로 알고 있다고. 그 집에서 줄곧 귀신처럼 누워있었으니 당연하지 않겠냐고. 그 말을 들은 후 경민의 표정은 점점 더 어이없다는 마음을 짙게 표현하고 있었다.
“귀신으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어. 어차피, 난 여기에 오래 있지 않을 거야. 재미있지 않아? 허공에 뜬 존재라는 것도.”
“어이가 없다. 그래서 귀신이라 그랬다고? 걔 바보야? 그걸 믿게.”
“어리잖아. 너도 잠시만 귀신인 척 해줘.”
“미치겠다. 어이가 없어. 너 여기 놀러왔어?”
“목표 없이 온 거니까, 놀러온 건지도 모르겠다.”
“난 네 장단에 맞춰 놀아줄 마음 없어. 네 행동에 대해서도 나, 화났어. 화나서 온 거야.”
경민은 한숨을 쉬었다. 바다의 계절은 겨울이다. 경민은 두툼한 옷을 껴입고 얼굴을 옷으로 가린 채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 입김이 공기 새로 새어나간다. 한참의 침묵 후에 나는 웃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줄로만 알았다.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새로웠다.
“곧 떠날 거니까. 그 동안은 놔둬줘. 욕은 나중에 들을 테니까.”
“돌아올 생각이 있긴 있냐? 없는 것 같아서 와봤는데.”
경민을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 눈길을 피했다.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무력했다. 회복을 하려면 스스로가 그 힘을 어떻게든 끌어올려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써보았지만 아직도 나는 무력했다. 그 자리에 멈추어서, 고장나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다.
“걔가 그렇게 좋았어? 이렇게 미친 척할 만큼?”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럼? 그렇게 맘이 아프디?”
“…….”
“죄책감 때문에 이러면 그만하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병신 짓하지 말고. 이게 속죄도 아니고, 뭔 짓이야. 그리고 걔 문제였어. 네가 이러면 걔가 지독히 이기적인 병신이라는 걸 증명하는 꼴밖에 안 돼.”
“참 어렵다. 인간의 관계라는 게.”
이기적인 병신이라는 말이 묘하게 기억에 남는다. 맞는 말이었다. 그 녀석도, 그리고 나도 지독히 근시안적으로 이기심을 발휘하다 자신의 칼에 자신이 찔려죽는- 세상이 더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인간이었다.
“어, 왔다! 왔어요?”
“응. 진수도 있네.”
어느 새 진수도 집에 머물러있다. 진수도 효은이 여기에 자주 온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종종 이 곳에 찾아오곤 했다. 옆동네에서 이까지 30분은 족히 걸리는데도, 별로 엄살이 없는 아이였다.
“저 언니도 귀신이에요?”
경민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는 것에 상관없이 나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졸지에 귀신이 된 경민은 죽을상이었지만 별로 아무 말도 없는 걸 봐선, 그러려니 할 모양이었다. 귀신이 아니라고 외치면, 귀신들은 수줍으면 그러는 게 예법이라고 하려고 했었는데, 귀신예법을 창작하거나 그럴 필요는 없어진 모양이다.
“그런데 귀신은 한 곳에 머무르고 안 떠나지 않아요? 보통 나갔다 들어오고 그래?”
진수가 물었다. 마지막에는 효은을 보며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슬슬 내가 인간으로 보이는지 의심이 짙게 묻은 표정이다. 하긴 인간으로 들통 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애초에 나를 귀신으로 만들어버린 것도 진수였지만.
“귀신의 개성이지.”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나는 원래 여기 있지 않았어. 잠시 있다가 갈 거야.”
“그럼 원래 어디 있었는데요?”
“글쎄.”
“그럼 왜 왔는데요?”
뭔가 느낌이 왔는지 끊임없는 추궁이 이어졌다.
“애인이 여기서 죽었거든. 그 귀신이 여기 있지 않을까 해서, 대화나 해보자고 온 거야. 말도 안하고 죽었으니까. 좀, 말이나 좀 나눠보자고.”
“만났어요?”
“만날 듯 말 듯……그러네.”
효은이 손바닥을 쳤다.
“그래서 아까 나간 거구나! 찾으러!”
“응? 하하,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가면 안 돼요. 계속 여기 살아요. 안 돼요?”
효은이 붙들었다. ‘어휴.’ 들릴 듯 말 듯한 경민의 한숨이 못내 안쓰럽다. 경민은 힐끗 보더니, 눈이 마주치자 나를 외면했다. 효은은 이곳에 오면 집으로 가지 않으려 했다. 여느 때와 같이 간신히 아이들을 보내고, 정적이 가득 찬 집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간 이후에 경민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돌아올 생각이 있긴 있구나.”
“사실 없었는데.”
“호오.”
“귀신이 되어버렸으니까. 귀신으로 계속 살 순 없잖아. 난 귀신이 아니니까.”
“저 애들한테 감사해야겠네.”
“그나저나 너 계속 여기에 머물러도 돼?”
“호오, 너한테 그런 소리들을 정도로 허술하진 않아. 일주일치 휴가 냈으니까, 그렇게 알아둬. 두 번째로 이러면 정말 인연을 끊을 거다. 귀찮게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래.”
마음에서 이미 연이 끊긴 기분이 들어 쓸쓸해졌다. 밤바람은 차갑고, 먼 곳에서 울리는 바닷소리는 여전히 똑같은 파장으로 부서진다. 모든 것이 무너졌으면 할 때가 있다. 빗속에 눈물을 흘려보내는 것처럼 모든 것이 스러질 때 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무너져버릴 수 있게.
“아빠한테 맞은 거야?”
경민은 약을 사러 나가고 마루에는 아픈 아이가 있었다. 여기 온 지 고작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심한 상처가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집이 불안한 건 알았지만 나는 개입하지 않았다. 귀신이라는 게 하나의 변명이었고 곧 떠날 입장에서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되리라는 게 둘의 변명이었다. 하지만 이 상처를 보는 순간, 나는 또 그 녀석의 흔적에 가슴이 저릿했다. 나는 또…….
“왜 이렇게 된 거야. 이게 뭐야. 덧나면 안 되는데.”
나는 속으로 분노를 간신히 견뎌내고 있었다. 아이라는 이유로, 약하다는 이유로 등에 피가 덕지덕지했다.
“내가 엄마 이야기를 꺼내서 그래요. 아빠는 엄마 얘기 꺼내는 거 싫어하는데.”
아이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들었다. 아이의 몸이 엷게 떨린다.
“내가 잘못한 거예요.”
“잘못하지 않았어.”
“잘못한 거예요. 엄마는 우릴 버렸는데.”
“말하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이라서 너를 때려?”
갑작스러운 고함에 놀란 것처럼 아이는 긴장하고 경련을 일으킨다. 내 어깨를 잡아 진정시키는 사람이 있었다. 위를 보자 경민의 얼굴이 굳은 채, 놓여있었다. 굳은 얼굴은 흥분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이는 늦으면 혼난다고 말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운 모양새를 한 아이를 그 집으로 보내놓고 나는 여전히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바다의 냄새는 여전히 근처를 스몄고 경민은 말없이 마루에 앉아있었다.
“설마 쟤 때문에 여기 계속 있었던 건 아니지?”
“아니야.”
상처에 관심가진 것도 처음이다. 아니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경민은 내가 아이 때문에 여기에 있다는 것에 확신을 가진 듯, 얼굴을 굳히고 한숨을 쉬었다.
“너무 이입하지 마. 어차피 떠날 곳이니까.”
“…….”
“어설픈 도움은 상처만 남길 수 있어. 아니, 이미 너무 이입했어. 네가 책임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잖아. 현실적으로 생각해.”
“…….”
“대답 안 해? 어쩌려고 그래.”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나한테 뭐가 남았어. 나는 계속 도망치기만 했잖아. 이기적인 내가 이제 나도 질려.”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는 거야. 어떻게 참견할 건데. 여기 온 지 이 주밖에 안된 녀석이 욕먹으려고 발악하는 것밖에 더 안 돼. 약 발라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어차피 학생이면 공부하고 직장인이면 생업에 종사해야 하잖아. 안 그럴 거야?
“진심이야?”
“넌 귀신이잖아. 귀신이라며.”
나는 초점을 멍하게 두며 앞을 바라보았다.
“귀신답게 행동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귀신답게. 그걸 지키려면 나는 사라지면 안 돼. 여기에 항상 있어야 해. 그 애한테 귀신은 그런 존재야.”
“흔히 일어나는 그 모든 일을, 우리가 책임질 순 없어.”
경민은 허리를 꼿꼿이 피며 말을 내뱉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주까지 정리해. 너랑 같이 올라갈 거니까.”
“싫다면?”
“너를 버릴 수밖에 없지.”
삐걱.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경민은 사라졌다. 끝까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며칠 전의 내 생각과 경민의 생각이 동일했다. 지나친 참견, 지나친 개입이라고. 내 일에 대한 모든 개입을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타인에 대한 선도 명확했다. 그래서, 며.칠.전.까지는 경민과 생각이 같았다. 하지만 이런 유의 일이 있을 때, 내가 동일한 태도를 취해 일어난 일을, 나는 알고 있다. 바다로의 추락, 죽음, 상처, 절망.
하지만 내가 참견할 수 있는 방식 또한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귀신에게 물어보아도, 귀신은 대답이 없다.
“너는 어땠어. 기분이.”
역시 대답은 없었다. 죽은 사람은, 대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