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밤, 공기의 무게7
연은 놀랐지만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띄는 뉘앙스와 함께 한 몇 달의 끝에서 들은 부조소식이라 연은 심지어 매듭을 짓는 느낌까지 들고 마는 것이었다. 이런 최악의 소식이 당연히 있을 것 같다고 연은 생각하고 있었다.
경민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요즘 시대치고는 이른 죽음이었다. 연은 느닷없는 소식에 경민을 걱정했지만 정작 빈소 안의 경민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사람은 많이 없었다. 경민의 선후배, 친구들이 왔다 갔다 했지만 어른은 거의 없고 젊은 사람들뿐이었다.
“왔구나.”
사람이 많이 빠져나간 후, 경민은 연을 툭 쳤다. 할 일은 별로 없지만, 연은 빈소의 일을 돕던 차였다. 연은 망설이다가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설마, 몇 주 전부터 망설이던 말이 부모님 상태였어?”
정말로 그렇다면 머뭇거리고 비밀로 하던 경민의 태도가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경민은 아무 말도 없다가 이내 잠깐 나가자고 말했다. 빈소는 비어있었다. 연이 망설이자, 경민은 힐끗 향이 지펴진 곳을 보았다.
“올 사람 없어. 가져갈 것도 없고. 명예도 없어.”
연은 잠자코 밖으로 따라나섰다.
“실은,”
경민은 그렇게 서두를 떼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난 아빠가 셋이야. 정확하게 말하면 아빠가 없지.”
연은 경민을 보았다. 경민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그렇지.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어.”
장례식장의 복도는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저기에 검은 옷을 입은 중년들이 서서 차가운 공기 위로 담배연기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다른 방의 조문객들이리라 생각하면서 연은 천천히 경민을 따라 걸었다.
“망설이다가 겨우 말하는 거야. 역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엄마가 몸이 안 좋은데 깡패들이 와서 깽판을 부려서 다치셨어. 근데 검사하다가 보니까 폐암 말기라는 거야. 엄마지만 끝까지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말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 한 놈이면 모르겠지만 여러 놈한테 당했으니 어떻게 하겠어? 넌 이런 거 상상도 안가지? 힘 앞에서는 속에 울화통이 터져도 참는 거지. 더 크게 당할지도 모르니까.
난 엄마가 아프다고 했을 때 내가 놀랍더라. 난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거든. 엄마가 어떻게 되도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어. 냉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증오가 넘쳐서 울었지.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볼 일도 없었을 텐데. 솔직히 오래 전에 엄마 랑도 인연 끊었었어. 휘말리기 싫었거든. 엄마한테는 의지할 수 없었어.
손님 한 분이 늘 챙겨주셔서 그 분을 따르면서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여기서 이러고 살다가는 나 죽는다고 절실했던 거야.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유일한 소원이었어. 그 손님은 엄마 친구였는데 내가 마음에 드셨나봐. 살면서 행운이 따른 거야. 사랑은 그 분께 받았어. 그래도 단 한 명의 은인으로 이만큼 벗어나서 살고는 있는 거지.”
연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연은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길길이 날뛰며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래 전부터 친구였지만 경민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연이 궁금해 할 때마다 딴청을 피웠다.
“넌 강하니까.”
연이 말했다.
“그래. 강하지 않으면 안 되지. 평범하다면 모르겠지만 내 생활이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혹시 몸에 문신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니?”
연은 문득 궁금증이 일어 그렇게 물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문신이 생겨? 난 타투에 취미도 없고.”
“그래.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연은 어정쩡하게 대꾸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쨌든 그 동안…….”
연은 입을 떼고는 망설였다. 그 동안 친구인 경민에 대해 알았던 것은 활달하고 속이 꽉 찬 아이라는 것이었다. 연은 경민에 대해서 부모님이 강하게 키우는 자식이라고 생각했고 타고난 품성이 유달리 강하다고 생각했었다. 유달리 강한 독기가 있었지만 그 독기는 규칙을 지키는 데에 쓰이곤 했었다. 연은 자기가 흐트러지는 것에 대해서 비정상적일 정도의 혐오와 경멸을 가지고 있는 경민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때로는 해야 할 것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게 그렇게 말하기 힘들었어. 네가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연은 난간에 팔을 괴고 말했다.
“화냥년의 딸이라는 게? 말하기 쉬운 줄 알아?”
경민의 입가에 비웃음이 가득 물렸다. 공격성이 가득 담긴 조소였다. 연은 그 미소를 보며 흠칫했다. 경민은 고개를 돌렸다.
“너는 모르겠지. 평화로운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차이점. 사실 말하는 거, 어렵지 않아. 어렵지 않게 말하는 사람도 많아. 그런데- 나를 보는 눈은 분명히 달라질 거야. 분명히, 안 좋은 쪽으로.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얘는 이래서 이렇다.’가 아니라, 화냥년의 자식이라 저렇다……라고 말하게 되겠지. 그리고 잘해도, 화냥년의 자식이 잘해봤자-고. 그러니까 말하는 게 어려웠어.”
“화냥년이 잘못된 거야? 청나라에 잡혀간 여자들이 화냥년의 어원이래. 그 사람들이 정말 못된 사람들일까.”
“단어의 의미만 파헤치는 건 의미가 없어. 현실성이 없다고. 화냥년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게 아니야. 사람들이 거기에 품고 있는 적대적인 감정이 중요한 거지. 단어의 사전적인 뜻은 사전적일 뿐이야. 사람들이 쓰고 있는 뜻을 생각해야지. 단어는 이미지야. 어떤 말은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이 생각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조금만 지역이 달라도 단어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거지. 그런 사람들의 생각에서,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그 단어가 붙는 순간,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 밑의 인간이 되는 거야. 그들은 내 약점을 하나 붙잡은 거지.”
“나한테 약점을 보이는 게 싫었어?”
연은 차분하게 물었다.
“네가 내 약점을 잡고 이용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야. 그건 너도 알거야. 오래 알고 지냈잖아.”
경민은 아무도 모르는 새에 약해져 있었다. 쇠가 단련되는 것처럼 강해진 세월이었지만 완성된 검도 휘두르다보면 날이 다 나가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병석에 누운 시간 동안에 약해져있었다.
“잘못됐다고 해도 어머니의 일이야. 딸이 잘못된 거야? 그게 왜…….”
“세상은 진실이 필요 없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거지.”
경민은 비웃었다.
“너도 내 친구라서 그렇지, 이 얘기만 듣고 나랑 친구를 하고 싶겠어? 말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나도 내 처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고 살았거든. 그런 걸 자꾸 생각해봐야 내게 좋을 게 뭐가 있겠어. 우울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나도 더 잘 살고 싶다고. 내 약점을 나한테 각인시켜서 뭐 어쩌자는 거지? 그러니까 생각을 안 하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너한테 말하지도 못했던 거야. 그건 내가 아니었으니까. 그게 내가 아니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었어. 타고난 사람들은 모를걸.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어떤 마이너스점도 없이 태어난 사람들은 몰라. 나도 그런 사람들로 태어났다면 평화롭게 살았을걸.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사람의 말이긴 하지만.”
“넌 잘 살고 있잖아. 평화롭게도 살고 있고. 오히려 내가 평화롭지 않은지도 몰라.”
“아니. 넌 몰라. 내가 뭘 보고 있는지. 뭘 생각하는지. 확실히 너한테 안보이려고 노력도 해. 너한테 내 이미지가 중요하니까. 넌 그만큼 중요했었어.”
“뭘 보고 있는데?”
덜 중요해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은 물었다.
“이기는 거. 어떻게 해서든 이기는 거. 이미지로든, 뭐든. 그냥 열심히 하는 애들하고 달라. 넌 내 속에 들어오면 놀랄 거야. 실제로도 엄청나게 표리부동한 게 나야. 이건 내 최대의 비밀인데, 너니까 말하는 거야. 난 굉장히 겉과 속이 달라.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경민은 태연했다. 고개를 들고 약간은 오만한 표정. 연은 일부러 뻔뻔해 보이려고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경민도 경민이 생각하는 경민과는 다르겠지만 자신도 생각만큼 정직하거나 순진하지 않은 것 같은데. 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경민을 보았다. 경민은 말을 이었다.
“우리 학교도 같았잖아. 기억나? 그 때 선생님이 네가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았대. 날 따로 불러서 너를 챙기라는 거야. 미친 소리지. 너도 처음 듣지? 내가 널 안 지켰거든. 왜냐하면 넌 잘 살고 있잖아. 마음 되게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애가 이상한 집에서 태어난 이상한 아이로 취급을 받고, 나는 기를 쓰면서 감추고 있으니까 적응 잘하는 아이로 보였던 거야. 사람들이 아는 거라고는 고작 그런 거지. 그러면서 다 안다는 듯이 떠들어대. 삼류심리상담사도 날보고 떠들어댈까, 널보고 떠들어댈까, 아니면 둘 다 정신병자라면서 정신병자같이 말할까? 비율상 널 보고 떠들어댈 확률이 높을걸? 난 밝으니까 말이야.
넌 순진해. 너한테 왜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지 알아? 네가 그런 애들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다 이해받고 싶어 하거든.
치료사들이 치료해주겠다고 위압감을 주길 바랄 것 같아? 감방에 간수도 아니고 복종은 하겠지만 마음으로 원하지는 않겠지. 너는 남들에게 줄 수 있는 애정이 있어. 그건 타고난 거지. 사랑받고 자랐으니까. 질투해도 얻을 수가 없는 그런 거.
상처를 치료하고 싶어 하는 애들한테는 그게 잘 보이는 거야. 너는 몰라. 모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난 치료 같은 건 못해. 그런 생각도 못해봤어.”
“의식해서 하는 건 아니겠지.”
“나도 비정상적인 면이 많고.”
연은 공기 새로 웃음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말한다.
“치료됐다면 나한테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내가 뭔가 원했을 수도 있잖아?”
“네가 뭘 원했어?”
경민의 빠르고 전투적인 말은 그 어조에서 이미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큼 확신이 묻어있었다.
“자유라는 게 풍족해야 자유로운 것 아니야? 돈이 부족하지 않을 만큼은 있어야 돈에서 자유로워지고 사랑도 받아야 사랑에서 자유로워지지. 한번 결핍되면 갈망하게 되거든. 난 그래서 네가 부러운 거야. 넌 부족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롭게 다니고 있는 거야. 어떤 사람들은 그런 너의 자유에 치유 받지.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니야. 나는 네 자유를 빼앗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싫어해. 증오한다고.”
“난 결핍된 게 없는 사람……아니야.”
연은 억울했다. 자신도 아팠던 적은 많았다. 비교가 될 일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이 느낀 세상의 쓰라린 것들이 친한 친구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을 수 있다는 것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네 결핍은 그 놈이 만들었어.”
경민은 연은 노려보듯 보았지만 연은 그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네 자유를 빼앗고 싶었던 거지. 심지어 그런 짓까지 해서 말이야. 너도 이제 확실하게 느끼잖아. 아무 것도 아닌 것의 무게. 단어들의 무게. 이미지의 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나한테만 가혹한 것들의 무게 말이야. 다른 사람은 너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 혼자만 아무 것도 못하면서 너무 치열하게 느끼고 절망하게 하는 그 느낌. 한 번 느끼게 되면 거미줄에 걸린 것 같단 말이야. 넌 나보다 더 잘 살 수 있었는데.”
“후회하지는 않아.”
“정말?”
“…….”
“정말 후회하지 않아?”
“모르겠어.”
연은 솔직하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해결이 되는 걸까. 애초에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이긴 할까. 연은 경민을 보았다.
“그런데 너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긴 했었어.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이다. 네가 어떤 상황에 발 디디고 있는지는 몰랐어도 난 할 수 있다면 너처럼 살아나가고 싶었어.”
“나처럼? 절박하게?”
경민은 조소한다.
“절박할 때야말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잖아. 항상 되는대로 흘러왔으니까.”
“이런 걸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는 거지. 난 되는대로 흘러가도 되는 집에 다시 태어나고 싶어. 지금 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절박해졌어?”
“살아있다는 느낌보다는 죽지 않았다는 느낌이야.”
“무겁지?”
“…….”
연은 경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뭐라고 길게 말할 수가 없었다.
“절대 이건 플러스 요소가 될 수 없어. 절대. 인생의 마이너스야. 순진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마이너스지.”
연은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다치는 것이 정상이고 다치지 않았던, 다치지 않아본 사람이 비정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자신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비정상적인가? 재의 말대로 34%.
연은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꼈다. 연은 현실성이 강한 경민이 아름다워 보였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착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연이었다. 착하다는 말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은 시대였지만 연은 착하다는 말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착하다고 말해도 잃을 게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경민의 말대로 호강에 겨운 소리였다.
그래도 결핍은 있었다. 그 남자를 만나기 전에도 결핍은 있었다. 그 것을 채우면 행복해질 것 같았다. 사람들이 권하는 아름다운 이미지는 어쩌면 결핍의 무게 같았다. 그 결핍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과 그 옷에 맞추려고 발버둥치는 이들. 그 수많은 이미지를 결핍이 있으면 짊어지고 결핍이 없으면 무게가 되지 않아 지나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허공에는 무게가 있다.
공기의 무게는 이미지의 무게이기도 했으며 이미지의 무게는 사람들의 시선, 일까. 연은 끊임없는 생각 속에서 자신이 결핍이 적다는 것을 인정하고 말았다. 적어도 시선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았다. 자신에게 결핍된 것은…….
“넌 책임감이 강해서 더 그래.”
연은 말했다.
“책임감? 아니야. 지고 싶지 않았던 거지.”
“누구한테 지고 싶지 않았던 거야?”
경민은 세상의 것들 대부분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타고난 기질이 강했다.
“세상.”
경민은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당연한 것 아니야?”
세상은 너무 거대한 것이었다. 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세상이라는 커다란 것이 이해하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