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밤, 공기의 무게4
-살아있나요.
일주일 즈음 지난 무렵에, 연은 문자를 찍었다. 이재에게 가는 문자였다. 경민과 하루간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나서 그 남자의 이야기는 경민과 겹쳐 계속 떠돌았고 그럴 때마다 연은 문자를 할까 말까 계속 망설였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무사합니다.
한참이 흘러서야 답이 왔다. 연은 이런 관계가 참 낯설다는 생각을 했다. 답을 봤으니 됐다고 생각하는 찰나, 연은 마음에 걸리는 것을 묻고 말았다.
-정말로 죽을 생각인가요?
답은 오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올까말까할 듯 보였다. 연은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의 울림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인지 안다는 듯 딱딱한 목소리에서는 연이 불청객인 것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 연은 그래도 휴대폰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내기에 불과합니다. ……저 자신의 실험이고요. 원래 남의 사정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경멸하지 않은 것은 감사하라고 한다면,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지만, 오지랖이 넓으시군요.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조자체는 첫 만남 때처럼 느리고 정중했다. 그러나 말 안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오지랖이 넓은 건 아니에요. 전…….”
“게이에게 특히 동정을 붓고 싶은가보군요. 그런 여자 분들이 많더군요.”
“하. 제가 기를 쓰고 이러는 건, 그런 식의 죽음을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식으로…….”
이번에도 연의 말은 잘렸다. 재는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지, 예민해져있었다.
“그런 식이라니요.”
“알지도 못하는 새에 혼자 누가 죽어버리는 건 더 이상 보기 싫다는 이야기에요. 듣기도 싫고, 그런 일이 있다면 막고……싶어요. 한 사람이면 충분해요. 옆에서 한 사람 죽어나가면 충분하죠. 왜……. 손도, 손도 내밀어보지 않고 예고 없이 혼자 죽어버리면, 당신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기분은 어떤 줄 알아요? 모르겠죠. 지독히도 이기적인 생각밖에 안할 테니까.”
연은 얼굴이 상기된 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두서가 없다고 생각한다. 재의 태도에서 자신도 화가 난 상태였다.
“귀찮겠죠. 나도 간섭하기 싫어요. 근데 왜 나에요. 다른 사람도 많잖아요. 왜 하필이면 나와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한 건데요? 죽지 않는다고 하던가!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걸. 저도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게 아니에요.”
연은 흥분해서 뱉어냈다. 어찌 보면 극도로 이기적인 말이었다. 듣지 않았다면, 알지 않았더라면, 눈과 귀를 가렸다면, 이렇게 혼란스럽거나 고민하거나 과거의 상처를 되새기며 고통스러운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자신이 들었는지, 연은 멀쩡한, 그러나 흉터가 남아있는 심장이 욱신거렸다. 되레 화를 내는 목소리에 정적이 흐르던 휴대폰에는 한참 후에야 어떤 말이 흘렀다.
“누가 죽었어요?”
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죽음의 그림자는 너무나 가까이에 있었다. 어쩌면 삶과 죽음은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연은 생각해보았지만 그래도 역시 곁의 누군가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낯선 일이다.
두 명의 사람이 죽었다. 스스로.
두 명은 잠시나마 자신의 일상에 머물러 있다가 사라졌다.
두 명은 세상에서 태어난 지 3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이제 자신의 인생에서 세 번째. 연은 가느다랗게 늘어진 신경줄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을 인간의 도리를 못한 패륜아, 쓰레기로 몰아세우는 일은 매우 쉽게, 흔히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을 스쳐 지나가다보면 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죽기 직전까지 그들은 남을 해치지 않았었다.
연은 자신의 주변에 어째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보면 멍해진다.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이들은 어떤가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은 옆에 그런 일이 있어도 쾌활하게 생활해나가고 있었다. 멍해질 때면 연은 뒤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쾌활한 듯 간신히 지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쾌활한 부분을 좋아해주고는 했다.
연은 감정을 느끼거나 공감하는 것에서 만큼은 어느 정도 타고난 재능이 있었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 능력은 이 세상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고……. 그저 자신을 갉아먹고 있을 뿐이었다. 천천히.
1여 년 전의 일이지만 기억은 습기 찬 돌 구석에 단단히 낀 이끼처럼 언제나 머물러있다.
죽은 아이 두 명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한 명은 친하지 않았고 한 명은 제법 친했다. 친하지 않았던 한 명은 대학교 때 어울려 다녔던 그룹의 아이 중 하나였다. 연의 친구인 경민도 그녀를 알고 있었다.
죽은 아이는 대학교 친구였다. 학기 초에 10명가량의 아이들이 서로 뭉쳐 다니게 되었는데 서윤은 그 중 한 명이었다.
경민은 서윤을 욕했다. 그녀가 멋대로 죽었기 때문이다.
연과 경민은 가벼운 인연으로 시작하여 오래도록 알고 있었다. 서로 가장 친하다고 여기며 서로 사고를 칠 때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서로를 감쌌다. 아웃사이더로 사는 이들 특유의 의리였다. 대학에서는 무리를 지어 다니기도 했지만 경민과 연은 어릴 때부터 ‘보편타당하게 인정받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연과 경민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인연으로 중고등학교는 다른 곳을 나왔지만 계속 연락을 취하다가 대학은 공교롭게도 같은 학교 같은 과에 배정받았다. 서윤은 그 곳에 함께 있었다.
연은 경민의 욕이 서윤을 향한 것이 아니라 경민과 자신을 감싸기 위한 것임을 알았기에 그 욕이 고마웠지만 때때로 멍해졌다.
죄책감은 죄책감이었지만 경민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연은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왜 말하지도 않고 죽었을까. 죽음은 두 번 있었다. 서윤의 죽음도 충격이었지만 연은 그 전에 이미 한 번의 죽음을 겪었었다.
자신과 사귀었던 한 남자의 죽음. 남자의 죽음은 연을 미궁으로 몰아넣었다. 그의 죽음이 충격이었던 것은 그가 연을 믿고 있었다고 연은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호를 보냈다. 연이 그 것을 외면했을 뿐, 그는 신호를 보내긴 했었다. 자신은 그 것을 무시했다. 그 것은 오래도록 남는 죄책이었다.
연은 그 때부터 사람들에게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그녀가 예민하게 구는 동안 사람들은 무심했다. 1여 년간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찰나, 그녀가 죽었다. 아무런 신호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면 또 연 스스로가 그 신호를 외면하거나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더 충격을 받은 것은 2년 전의 죽음이었으나…… 1년 전 일어난 또 한 번의 사고로 인해서 연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과 혐오를 어디로 돌려야할지 알 수 없었다.
급작스러운 죽음에 얼떨떨한 연에게 다가온 감정은 충격 이전에 배신감이었다. 배신감 이전에 상실감이었다. 그리고 상실감 이전에 무력감이었다. 그 애가 죽기 전까지 자신이 들은 말이나, 자신이 그 애에게 해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자살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동기를 몰랐다. 어떻게든 붙인 동기가 우울증이었지만 친구들은 누구도 그 동기에 납득하지 못했다. 만일 우울증이었다면, 그들은 속아온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늘 밝았기 때문에.
졸업하고 나서도 친구들 중에서는 가장 잘 된 케이스 중 하나인 친구였다. 연의 친구들은 서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외적으로 보았을 때, 죽을 이유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녀의 부모 역시 죽음에 대해 납득하지 못했다.
그 애는 목을 달고 매달린 채로 마지막을 보였다고 전했다고 했다. 당당하고 확실하게 살아왔던 성격 탓일까. 죽음마저 실패가 없었다. 유서는 없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 애는 암묵적으로 언급하지 못할 것이었다. 우리를 신뢰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었다는 것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아무도 그녀가 우울한 것조차 알지 못했다. 배신감과 상처를 나름대로 안게 된 기억. 그 애는 왜 말하지 않았을까. 혹은 말하지 못했을까. 자신의 아픔에 대하여 왜 숨긴 것일까. 왜 죽었어. 죽지 마. 죽은 사람에게 대고 뒤늦게 전하는 말이 허망하기만 했다.
차라리 그 죽음에 ‘이유’가 있다면.
“더 이상은. 제발.”
연은 수화기에 대고 한숨을 쉬었다. 머릿속이 엉클어져 말이 나오지 않는다. 더 이상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음에 연락할게요.”
연은 전화를 끊었다. 이번만큼은 제발. 더 이상은 제발.
연은 “너희 동네 앞이야.”라고 연락이 온 전화를 받고 동네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초췌한 차림으로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경민을 데리고 바로 앞에 있는 커피숍에 간다. 먼저 자리에 앉은 경민에게로 연은 카푸치노 두 잔을 들고 탁자로 가서 앉았다. 카푸치노에는 하트가 거품 위로 하얗게 그려져 있었다.
연은 경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민이 불러서 만난 것이지만 경민은 또 말이 없었다. 운 티가 나는 얼굴이 안쓰러웠다. 솔직한 성품에 때때로 생각 없이 마구 말하는 경향도 있어서 ‘단순무식’하게도 비치는 경민은 며칠 째 저답지 않게 비실비실했다. 경민이 한숨을 푹 쉴 때, 연은 그 한숨을 세었다. 저 것으로 10번 째 한숨이다. 경민이 종종 울며 전화하면 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경민은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쉬었다.
연은 경민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는 시원시원한 성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면은 낯설기도 했다. 연은 경민의 막이 생각보다 견고하다고 생각하며, 차마 다가가지 못한 채 멍하니 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와는 곧 만나기로 했다. 낯선 사람을 꺼리는 데다, 성질까지 부려버린 낯선 사람이라, 연은 만나기가 껄끄러웠지만 만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당신의 주위 사람은 당신이 이런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연은 꼭 그렇게 묻고 싶었다. 그 질문이 무례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의 이미지는 신중하며 진지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는 경건하게 여겨질 정도로 진지하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 안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시 경민에게 집중했다. 아직도 경민은 넋을 놓은 듯한 표정이다. 연을 불러내기는 했지만 옆에 누가 있든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윤이 기억하니?”
13번째의 한숨이 떨어지자 연은 물었다. 경민은 14번째 한숨을 쉬다 몸을 움찔했다. 금기였다. 그 애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없는 것처럼, 다루어지지 않는 존재. 그러나 각자의 머릿속에는 누구보다 강하게 남아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왜 죽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