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밤 환상환멸4
“무슨 소리죠?”
“실종되었다면서요. 평소에 있는 곳에 가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는 특정한 곳밖에 가지 않아요.”
“그래요?”
그녀는 확신한다.
“그래요. 그는 제가 찾는 곳. 그 곳들밖에 가지 않아요.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찾아볼 수 있겠어요?”
“노력은 해볼게요. 자신은 없어요.”
노력을 할 생각도 별달리 없으면서, 나는 대충 대꾸했다. 말해달라고 했던 내 직감은 분명히, 그는 여기 어디에도 없다는 것에 불이 울리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해보았자 이 사람이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 지나온 곳, 어디에도 그가 없다고 생각해요.”
역시 그녀는 믿지 않았다. 신념이 확실한 사람 특유의 무시로, 내 말은 상대에게 닿지 않고 허공에 흩어졌다. 듣긴 들은 것인가 싶을 정도로 미동도 없어서 나 역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날, 진성이란 이름을 가진 그 남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름이야 처음부터 몰랐으니 그럴 수 있다하지만 그를 찾는 순간부터 그의 얼굴조차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다. 창백한 피부, 창백한 인상, 그리고.
더 이상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꿈을 꾸고 나서 하루만 지나도 그 기억이 희미해지듯이 그와 무슨 이야기를 많이 하기는 했던 것 같은데 그 이야기들과 그가 희미한 안개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내가 그다지 깊은 무언가를 맺은 사이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못 본지 오래됐다고 한들 이렇게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날 본 여자의 모습이 더욱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있을 지경이었다.
‘그녀에게 뭐랄 게 아니라, 나도 환상을 보고 있는 꼴이야.’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그녀도, 나도 틀렸다는 것을. 그리고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진성이라고 하는 그 남자도 틀려먹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들과 관련된 일을 잊기로 생각했다.
그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나는 평소의 삶으로 쉽게 돌아왔고 가끔씩은 그를 만났던 술집에 찾아가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지루할 정도로 보통의 삶이었다.
‘죽을 지도 몰라.’
때때로 주인이 진성에게 했던 말이 불확실하게 뇌 속에 울리어왔다.
‘쓰다.’
나는 종종 그 곳에서 술을 마시며 생각했다. 그를 만난 행위는 상당히 쓴 것이 아니었을까. 하며. 별로 말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생각했다.
‘죽었을까?’
대개 그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런 마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고 포기하게끔 되었다. 그런 것에 계속 신경을 빼앗기고 있기에는 삶은 빠르게 돌았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들을 마음속에 넣어놓고 싶지 않았다. 망각이라는 것은 의외로 강력했다.
술집에 가는 것도 전보다는 뜸해졌던 어느 날 나는 혼자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을 보았다. 익숙한 분위기. 나는 누구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이목구비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 분위기를 마주하자 누구인지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속에 있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은 상태였던지 나는 즉시 다가갔다.
“살아있네.”
먼저 말을 걸며 자리에 앉자, 거부해오지는 않는다. 언제나처럼 그와 내가 있으면, 내가 다가가고 그는 거부하지는 않지만 환영하지도 않는다. 이상한 느낌이 들 정도로 언제나와 똑같이 나는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앉아.”
그는 자리를 가리키며 대화를 허용해주었다.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다시 나타났구나.”
“실종?”
“그래. 실종.”
“내가?”
“응. 당신이. 네가.”
“실종된 적 없어.”
그의 말투는 지금 막 배워서하는 것처럼 어색했다. 나는 그가 마시는 잔을 바라본다. 투명하고 독해보이는 느낌이 액체너머로 넘실거렸다. 단지, 느낌일 뿐이지만 그의 말투는 약간 취한 듯 보이기도 했다.
“네 여자 친구가 네가 실종되었다고 말했어.”
“그런 적 없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때, 그에게서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문신을 했던 것일까. 처음 본 것이었다. 그는 오른쪽 검지에 이상한 문양이 길게 새겨져 있었다. 그건 나의 목덜미에 있는 문양과도 약간 닮아있었다.
“그래. 넌 그냥 나갔다온 거겠지. 실종이나 가출이 아닌 외출쯤이었겠지?”
나는 그의 말에 수긍하며 물었다. 그는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엷게 웃더니 물음을 던졌다.
“……너는 날 이해해?”
“아니.”
나는 잘라 말했다.
“그래?”
“완전한 이해가 어디 있겠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지.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나는 전혀 몰라.”
“그럼, 너는 너를 이해하고 있을까?”
“……질문이 어렵네.”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껍데기일 뿐이고 허상일 뿐 아닌가.”
그 것은 그의 혼잣말처럼 들렸다.
“허상도 실재하니까.”
나는 그 혼잣말에 혼잣말처럼 대꾸했다.
“이해의 첫 발걸음이 뭐라고 생각하지?”
그는 오늘따라 유달리 질문이 많았다. 생각보다 술에 많이 취해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답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작정인지 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아무 것이나 생각나는 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궁금증?”
“궁금증?”
그는 말 그대로 되묻는다.
“일단 궁금해야 파고들게 되겠지.”
“그래. 그런 것 같아. 너는 역시 내 마음을 읽고 있다. 읽고 있다는 말이지.”
나는 그의 말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끔 한다. 나와 그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나는 궁금해 했단 말이야.”
“무슨 소리야?”
“나는, 궁금해 했단 말이야. 궁금해 했단 말이다.”
“너 취했어.”
나는 술잔을 힐끔 보았다.
“왜 그녀는 나를 궁금해 하지 않을까.”
거의 주정이었다. 나는 앉아서 가만히 듣기로 작정하고,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말을 꺼내지 않는 동안에 그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은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참 쓸데없는 시간인지도 모른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중요했기 때문에 자리에 앉아있었다.
남이 보는 나. 내가 보는 나. 그리고 그 무엇에도 응시당하지 않고 홀로 놓여있는 실체.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에 소속된 남자가 아니라 그저 단지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우리는 서로 전혀 아는 것이 없었지만 그 것만으로도 우리가 맞닿아있는 틀은 꽉 맞아떨어졌다. 그는 그녀 때문에 몹시 아파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픔이 이해되는 것과 동시에 이질감이 들었다.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했잖아.”
이윽고 던져진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한다.
“사랑하진, 않는 것 같아.”
“왜?”
나는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상처받는 거야? 사랑하지 않는다면서.”
직설적인 질문이었지만 그와 나 사이의 관계의 기류는 진흙탕 물이 여전히 가라앉아 모기의 알을 키우는 것처럼 언뜻 잔잔한 것처럼 보이지만 잔잔하다고도 할 수 없는 무파동의 상태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