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기 장편/도시의 밤(일반)

도시의 밤 환상환멸3

강복주 2023. 2. 17.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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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다.”

 

실연주니까.”

 

나는 그 쪽을 빤히 보았다.

 

알았어, 알았어. 안 놀릴게. 시럽 많이 넣은 거 싫어?”

 

아니, 맛있어. 난 단 것 좋아하니까.”

 

그럼 다행이고.”

 

단 게 좋아. 쓴 것 보다.”

 

그건 대부분이 그럴 테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단 맛은, 대부분의 인간들이 좋아하는 맛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기에는 단맛이 제격이었다. 나는 흔쾌히 홀짝거렸다. 딸랑, 딸랑. 그러는 중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혹여나 해서 문을 쳐다보는데, 역시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여자였다. 한 명. 들어온 여자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눈빛으로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을 하고 있는 사람. 평범한 편이었다. 얼굴은 예쁘장한 편의 사람으로 깔끔한 인상이었다. 다만, 얼굴에 다급함이 그대로 묻어 있어, 무언가를 찾으러 온 느낌을 물씬 내고 있었다.

 

왜 저렇게 헤매고 있지?’

 

나는 그 사람의 왠지 모를 불안정이 신경 쓰여, 묘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헤매던 사람은 이윽고 바텐더에게 다가가 무어라 소곤거렸다.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에 항상 오던 남자가 있지 않았나요?”

 

항상 오시는 분은 꽤 계시니까요.”

 

주인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좀 독특한 사람인데요. 혈색이 유달리 희고…….”

 

나는 힐끗 그들 쪽을 보았다. 독특, 혈색이 유달리 희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에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은 손바닥을 쳤다.

 

아아, 그 분! 항상 오시다가 2주 전부터 안 오세요.”

 

“2주 전부터……. 남자와 함께 있던 사람이 혹시 있지 않았어요?”

 

가쁜 숨이 느껴질 것처럼, 다급하게 묻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굴까. 어쩐지, 그 남자와 현실에서 실제로 관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침묵. 갑자기 흐르는 정적에 이질감을 느끼고 고개를 들자, 주인이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여자의 헤매는 눈길은 나와 마주치는 순간, 고정되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여자를 보며, 물을 것이라도 있는 걸까-하고 당혹하는데 주인이 여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분과 관계가?”

 

여자 친구에요.”

 

여자가 대답했다.

 

…….”

 

…….”

 

침묵이 어색했다. 일이 내키지 않게 복잡해진다고 생각하는데, 여자가 말을 걸었다.

 

나가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러죠.”

 

주인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주인은 오해를 하는 것 같았다. 여자도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여자가 차분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괜한 오해로 감정적이게 되면, 이 상황에서는 내가 나쁜 사람으로 몰리게 되어있을 수밖에 없어서 나로서는 난처했다. 밖으로 나가자, 안보다 조금 더 밝은 어둠이 시원하게 펼쳐져 몸을 감싸왔다.

 

저기, 진성씨와 알고 있죠?”

 

"제가 알고 있던 그 사람 이름이 진성이라면요. 저는 이름을 알지 못해서 조금은 모호하군요. 지금, 이름을 들은 게 처음이거든요.”

 

그러고 보면, 그와는 통성명도 하지 않았다. 이상한 관계.

 

그 사람, 사라졌어요.”

 

?”

 

찾아…… 찾아 주세요.”

 

저는.”

 

부탁할게요. 없어졌어요. 아무도, 알지 못해요. 그 사람 어디로 갔는지.”

 

저는 이름도 알지 못했어요. 믿어줄 진 모르겠지만, 저는 이름도, 나이도, 직장도, 전화번호도 몰라요.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하시는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아마.”

 

그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고 했어요.”

 

…….”

 

오해하지는 않아요. 그렇게 경계하실 건 없어요. 당신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죠. 그리고 지금 보고 확신하는 거예요. 당신이라면 어디에 있을 지 알 것 같다고.”

 

대체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다는 거예요…….”

 

나는 난처했다.

 

없어졌어요.”

 

실종됐다고 하는 거예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비슷하니까.”

 

비슷하다. 그 것은 애매한 말이었다. 이 여자는 큰 착각을 하고 있다. 그는 특이하고, 그렇기에 발견된 동류도 나 하나 뿐.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와 똑같다고 생각해버리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 똑같은 기계가 만든 물품도 조금씩 다르다고 하는데, 우리가 똑같다는 것은 마치 다른 품종의 수첩이 단지, 수첩이라는 이유만으로 똑같다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이에요.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믿어줄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름도 모르고 있었어요. 제가 당신보다 그에 대해서 잘 알 리가 없어요.”

 

아니…….”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몰라요. 단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여자가 하는 말은 미묘했다. 여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이 조금 더 잘 알거에요. 나는 정말 하나도 모르니까. 안 찾아줘도 괜찮아요. 제가 돌아다닐 테니까, 여기 있을 거라는 느낌만 말해줘도 괜찮아요.”

 

이름도 모르는 제가요?”

 

그 제안도 이상했지만 내가 더 잘 알거라는 말도 영 이상해서 난감하게 여자를 보았더니,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는 듯. 그러니까 함께 가자는 듯. 차가 휙휙 지나치는 도로가에 여자의 작고 아담한 차가 서있었다. 나는 이렇게 난감한 일도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며 마력에 이끌리듯 그 쪽의 차 안으로 들어갔다. 상황에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여자는 달렸다. 나는 여자가 어디로 달리는지 몰랐다. 창밖으로 불빛들이 휩쓸리듯 지나간다. 그저 달리고 있는 여자는 또 내게 그가 어디 있는지에 대해 물었고 나는 모른다고 밖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답답한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이 마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냐는 암묵적인 물음처럼 느껴져 거북했다. 나는 운전자 옆 좌석의 문에 턱을 괴고 멍하니 앞을 응시했다.

 

어디로 가요?”

 

그가 있을만한 곳으로요.”

 

그가 실종된 지는 며칠이 지났죠?”

 

일주일이요.”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시간이다. 일주일.

 

보통 실종된 지 3일이 지나면 죽은 걸로 취급한대요. 하지만 진성씨는 죽은 건 아닐 거예요. 아마도.”

 

나는 여자를 흘끗 보았다.

 

그 결과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거예요. 진성씨는 평범하지 않으니까…….”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요? 보통이라면 의심할 법도 한데, 의심하지 않는 이유-가 그는, 평범하지 않으니까. 인가요?”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주인이 자꾸 관계를 이상하게 보더라고요. 당신은 의심이 가지 않나요?”

 

나는 싱긋 웃었다.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바람을 피울 사람은 아니에요. 평범하지 않으니까. 그런 평범한 남자와는, 달라요.”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평범하지 않아요. 평범하지 않아요. 이 여자가 하는 말은 이런 유 이외에는 없었다. 그를 묘사하는 다른 단어도 있을 수 있을 법한데 여자에게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특색은 평범하지 않은 것뿐인 것 같았다.

 

사랑하세요?”

 

. 사랑하니까 찾으러 다니겠죠.”

 

그를 이해하나요?”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그 말은 꽤 단정적인 어조여서, 언뜻 그녀의 신념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떤 종교의 교리처럼, 그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어투로,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모순.

 

그러나 그 모순에 대해 이상하다거나, 화가 나거나, 고쳐야한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보통 사랑하거나 사랑받거나 하지만, 또 사랑하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낯선 여자와의 드라이브 속에서 시간은 쉽게 흘러가고 있었다.

 

앞으로 몇 군데만 더 가면 그가 찾아가는 곳들을 전부 둘러본 셈이에요.”

 

아아. .”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멍한 기분이 들었다. 차가 가는 곳곳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있었다. 풍경은 네 옆을 계속해서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돌아볼게요. 그가 있을만한 곳을 제대로 말해주세요.”

그러죠.”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가, 여자의 옆얼굴을 스쳐보았다. 그리고 이제껏 해온 고분고분한 대답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을 덧붙였다.

 

……그가 다른 곳에 있을 경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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