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진주를 비추는 횃불

진주를 비추는 횃불

강복주 2022. 9. 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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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비추는 횃불

 

                                       강복주

 

횃불을 들고 어둠을 거닐며

난 우리가 태어나기 전

우리의 인생을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몸이라는 결계에 갇혀

별에서 이 곳으로 오며

암묵의 지도는 우리가 선택했으리라 생각해요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워있어도

어떻게 사는 것이 좋으냐하는

강력한 생각, 그걸 이끌기 위해

우리는 시련을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삶은 점점 얼어붙은 겨울과 같은데

그 강력한 생각은

생존만을 위한 단계였다가

생존을 보며 점차 더 차올라요

누군가의 삶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

횃불을 쥐며, 하나 더 만들어요

옆의 빈자리를 남겨두며

 

선택한 과정에는 분명 그런 게 있는 것같아요

마치 프로젝트처럼

각자의 숙제를 하고 있어요

저 불편한 이는 얼마나 어려운 숙제를 집어 들었을지요

그는 하늘에서는 우등생이었겠지요

살아감은 모든 이에게 어렵지만

특히 더 어려운 이들이 있겠지요

인고는 진주를 낳고

횃불은 바다를 보아요

 

나는 자유의지로 와서 진주를 주웠지만

가는 날엔 아마 놓고 가야 하겠지요

어려움은 사랑을 샘솟게 하였는데

사랑도 아마 쾌활한 사랑을 들고 무거운 사랑은 두고 가야 하겠지요

 

나는 선택은 했지만

어떻게 될지는 몰라요

되도록 채워가고 싶어요

버리고 가더라도

 

바닷가를 거닐며 눈은 풍경을 훑고

횃불은 꺼질 듯, 말 듯,

사람 없는 풍경 속에서

작은 오두막집을 지을 거예요

 

언젠가는 무너져 내리고

가지고 갈 수 없지만

나는 삶 속에서

선택하였습니다

 

진주를 사랑하기로

선택하였습니다

 

겨울은 변하지 않아도

나는 조금 변한 얼굴로

반질반질한 인고를 보았죠

횃불이 인고를 밝히자

이제는 그가 많이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진주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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